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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엘 클리닉 대학생 봉사자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진료를 돕고 있다.
[평화신문 :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외국인 노동자들 치유 보금자리 16년째

주일마다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강당 4층에 가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모이는 봉사자들이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과 의대생을 비롯해 약사와 간호사, 제약회사 직원, 주부, 동성고 학생들까지…. 이들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에도, 숨 막히는 찜통더위에도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켜왔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100%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봉사다. 의료부터 안내ㆍ접수까지 진료 때마다 봉사자 70여 명이 투입된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봉사단체 ‘라파엘 클리닉'(대표 김유영 교수)이 진료하는 주일에는 봉사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로 붐빈다. 라파엘 클리닉은 냉난방 설비가 돼 있지 않은 동성고 강당 복도를 진료소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열악한 진료환경에도 봉사자들은 안내와 접수 창구를 비롯해 각 진료과목 부스로 흩어져 진료받으러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친절히 맞고 있다.

라파엘 클리닉이 문을 연 지 올해로 16년이 됐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봉사자들 사랑이 깊어지면서 이곳은 외국인 노동자들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약국을 쉽게 찾지 못하고, 신분 노출의 두려움으로 병원 문턱에서 서성이던 불법 체류자들이 마음 놓고 진료 받는 보금자리가 됐다.

갖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 추운 겨울을 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라파엘 클리닉 활동에 도움의 손길도 잇따른다. 분당 소망교회 신자들이 주일마다 진료소 앞에서 빵과 우유, 차 등 간식거리를 나눠주고, 지난 5월부터는 이주민지원센터 ‘친구’에서 상담가와 변호사가 나와 외국인들의 법률상담을 도와준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 환자는 1만여 명이 넘는다. 진료과목은 내과와 정형외과가, 환자 국적은 중국과 필리핀, 몽골 순으로 많다.

라파엘 클리닉은 1958년 서울대 의대 가톨릭학생회가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는 도시 빈민들을 진료하기 위해 마련한 무료진료소가 모태가 됐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빈민진료 의미는 점차 퇴색돼갔다. 그러던 중 서울대 의대 가톨릭교수회는 천주교인권위원회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참담한 의료실태를 접했다. 1996년 고 김수환 추기경이 두 명의 파키스탄 사형수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명운동을 벌인 게 라파엘 클리닉이 문을 여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라파엘 클리닉은 1997년 4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첫 진료를 시작했다. 의정부ㆍ동두천 진료소를 열어 더 많은 외국인이 진료혜택을 받도록 힘쓴다. 2009년에는 이동진료를 시작,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다문화 가정을 찾아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파엘 클리닉 인터내셔널’을 발족해 몽골 의료인을 대상으로 의료교육을 하고, 필리핀과 네팔 등지에 의료장비를 지원하는 등 의료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라파엘 클리닉 사무국장 김우경(소피아)씨는 “라파엘 클리닉에는 특히 부부, 친구, 형제ㆍ자매 봉사자들이 많다”면서 “봉사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봉사하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음 편하게 진료받고 있다”고 말했다.

라파엘 클리닉은 독립된 진료소 건물 마련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앨범 음원을 기부한 피아니스트 노영심(마리보나)씨도 공연 릴레이를 통해 후원금 마련에 동참한다.

라파엘 클리닉 담당 고찬근(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신부는 “열악한 환경에도 봉사시스템이 자리 잡고, 외국인 노동자 밀집지역에 라파엘 클리닉 분소가 생겨나는 등 많은 분의 고운 마음으로 모든 일이 이뤄졌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후원을 요청했다. 문의 : 02-763-7595, 라파엘 클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