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봉사단체 라파엘클리닉이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소 건립 기금 모금을 위해 11일 오후 서울 혜화동 동성고 강당에서 개최한’라파엘의 작은 음악회’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한국일보 :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다시 시작입니다. 고개를 들어요. 지쳐있는 이 세상을 우린 서로 위로해 나가요….”
1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4층 강당. 매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로 탈바꿈하는 이곳에서 경쾌한 레게 음악이 울려 퍼졌다. 진료소 입구에 마련된 작은 무대 위에서 인디밴드 킹스턴루디스카가 트럼펫과 색소폰 연주에 맞춰 ‘시작입니다’를 부르자 300여명의 관객들은 엉덩이를 들썩였다.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아왈(29ㆍ나이지리아)씨는 “가사의 의미는 모르지만 듣기만 해도 흥겹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는데 지루한 줄 모르겠다”며 즐거워했다. 의료봉사단체인 사단법인 라파엘클리닉이 마련한 ‘라파엘의 작은 음악회’ 현장이다.
이날 공연은 라파엘클리닉이 진료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기금 모금 행사였다. 15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의 주치의로 봉사해온 이호영(분당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씨는 “그 동안 학교 강당을 빌려 진료를 해왔는데 이 건물이 내년에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이라 더 이상 쓸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라파엘클리닉은 1997년 4월 처음 문을 열었다. 서울대 의대, 가톨릭교수회, 가톨릭학생회가 이주 노동자들의 처참한 의료 현실에 대해 각성하고 반성의 뜻을 모아 매주 일요일 진료 봉사를 시작했다. 개설 당시 찾는 외국인 환자들은 하루 30여 명에 불과했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난 15년 동안 하루 평균 700명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료소 문을 두드렸다.
동성고 강당을 비워야 할 처지가 된 라파엘클리닉은 다행히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배려로 인근 상가건물을 얻었다. 하지만 건물 개ㆍ보수가 필요하고, 10년 넘게 써온 의료기기도 대부분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이호영씨는 “건물 개·보수와 의료장비 확충에 1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알게 된 음악인들이 나섰다. 작곡가 노영심씨가 총 기획을 맡고, 이문세, 윤종신, 정지찬, 바버렛츠 등이 동참해 기부 공연을 연 것이 올해 세번째다. 이날 공연장 옆에는 안양소년원 아이들이 찍은 사진 작품 40점을 전시한 ‘꿈꾸는 카메라’ 전시회도 열려 후원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배우 박상원씨도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아트포스터를 기증했다. 김우경 라파엘클리닉 사무국장은 “독립된 공간에서 안정적 진료를 할 날을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토레스(44)씨는 “이주민들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의료는 여전히 열악하다”며 “우리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진료받도록 돕기 위해 공연을 마련했다는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소정(23ㆍ대학생)씨는 “새 진료소가 생겨 더 많은 이웃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행사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라파엘클리닉 측은 목표액 10억 원을 모을 때까지 뜻있는 가수들의 후원을 받아 작은 음악회를 계속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