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에서 방송된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LCHF, low carbohydrate high fat diet)>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마치 수년 전 “간헐적 단식”의 돌풍이 휘몰아쳤던 때의 상황이 재연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25년 이상 비만 치료를 해왔던 저는 이 다이어트 방법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일종의 탄수화물제한 식이요법(앳킨스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덴마크 다이어트 등)의 하나로 잠깐 세간의 관심을 끌다가 곧 사그라들겠지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심지어 대한가정의학회, 대한비만학회 등 6개 전문학회에서 성명서를 내기까지 한 걸 보면 전문가들도 우려할 정도의 과잉반응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긴데요…
만약 이 방법이 새롭고 참신한 이론을 가지고 등장해서 기존의 다이어트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최신의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이라면 우리나라에서만 이렇게 요란한 반응을 보이진 않겠지요. 방송의 위력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는 단백질 섭취량은 유지한 채 탄수화물 섭취량은 최대한 줄이고 그 빈자리를 지방 섭취량으로 채우는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먹으면 칼로리 섭취량이 많아도 절대 살찌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방법은 “저탄수화물 고지방”이 아니라 “탄수화물 제한, 고단백 고지방” 다이어트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됩니다. 실제로 이 방법이 초기에 체중감량 효과를 보이는 건 탄수화물을 철저하게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탄수화물이 하루 50g 이하로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몸은 ‘케톤’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이뇨작용과 식욕억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외국에서는 탄수화물을 제한해서 케톤체를 생성하는 이러한 다이어트를 “키토제닉(ketogenic) 다이어트”라고 부릅니다. 이 다이어트를 하면 칼로리를 따지지 말고 마음껏 먹어도 살이 안찐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많이 먹지 못합니다. 느끼한 지방 때문에도 많이 먹기 힘들지만 케톤이 많아지면 식욕이 떨어져 섭취량이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지방 중에서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진 ‘포화지방’을 이렇게 많이 먹어도 건강엔 문제가 없을까요? 또한, 탄수화물을 이렇게 철저히 제한해도 괜찮을까요?
지방을 과잉섭취하게 되면,
1) 오히려 인슐린저항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방이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지 않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인슐린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으면 우리 몸의 합성모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지방이 쌓이지 않는 건 물론이지만 근육합성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디빌더들이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단백질 보충제를 먹을 때에는 반드시 탄수화물을 함께 섭취합니다. 그래야 근육이 붙기 때문이죠.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게 되면 지방이 정상적인 연소를 하기 보다는 케톤체를 만들어내는 불안정한 대사모드로 바뀝니다. 사실 케톤체를 만드는 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일수록 근육단백의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려는 우리 몸의 고육지책입니다. 아울러 케톤이 넘쳐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인슐린이기 때문에 무조건 인슐린분비를 억제하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동물실험에서는 장기간 고지방식을 주었을 때 만성염증이 악화되고 인슐린저항성이 나타납니다.
2) 알츠하이머병(치매)에 걸릴 위험이 증가합니다. 포화지방 섭취가 많을수록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증가합니다.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를 보면 포화지방을 45% 이상 섭취했을 경우에는 알츠하이머병 발병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3) 장내세균의 분포가 바뀝니다. 고지방식을 할수록 장내 유익균이 줄어들고 유해균이 늘어납니다. 아울러 장내에서 만성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의 생성이 늘어나면서 몸을 만성염증 상태로 만들 위험이 큽니다.
4)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위험이 커집니다. 좁은 우리에서 사료를 먹고 자란 동물의 지방에는 항생제나 잔류 농약 같은 지용성(지방에 녹는 성질) 화학물질들이 쌓여있을 수 있습니다. 중금속 역시 지방에 우선적으로 쌓입니다. 삼겹살을 수입할 때 삼겹살 지방에서 다이옥신 농도를 검사하지요. 기름기 많은 참치에 수은이 많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은 가급적 먹지 말하고 권고합니다. 모두 지방에 잘 쌓이기 때문입니다. 생태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우리 인간의 지방이야 말로 가장 오염도가 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무력감, 두통, 메슥거림, 우울감, 변비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실제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의학적으로 뇌전증 치료에 사용합니다. 뇌전증 치료에 오랜 기간 사용했던 연구결과들을 보면 신장결석, 근위축, 우울증, 미네랄 결핍, 성장발달지연, 골다공증, 부정맥, 췌장염, 고지혈증 등 다양한 부작용을 보고합니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로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지방 섭취량을 늘리면 단기적으로는 중성지방 수치가 떨어지고 HDL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갑니다. 인슐린에게 휴식을 주기 때문에 인슐린저항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이어트를 꾸준히 계속하게 되면 오히려 중성지방 수치가 올라가고 인슐린저항성이 나타나거나 더 심해집니다. 치료약물에 듣지 않아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다이어트 방법을 단순히 살을 빼기위한 목적으로 차용해 쓰기에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방법이란 얘깁니다.
방송에서는 탄수화물을 제한해도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거나 지방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연구결과 없이 인슐린저항성이 개선되고 중성지방 수치가 떨어지는 단기간의 결과만 놓고 지속적으로 실천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이미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 증상과 병의 경과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번 MBC 스페셜의 방송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포화지방의 누명이 이제 막 벗겨지려고 하는 타이밍에 지방을 맘껏 먹어도 괜찮다는 주장은 앞서나가도 너무 앞서나간 얘기입니다. 더구나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는 부분을 어느 한 쪽의 의견만 소개해서 일반 시청자들에게 오해와 혼선을 불러일으킨 건 잘못이라고 행각합니다. 이것이 약 설명서라면 대단히 불친절한 설명서입니다. 효능만 소개하고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이죠. 다만 아직도 주류의학에서 쉽게 버리지 못하는 “칼로리”의 개념보다는 영양소의 분포가 더 중요한 개념이란 걸 깨닫게 해준 것, 그리고 지방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는 오해를 깨뜨려준 건 긍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음식은 단순한 칼로리 덩어리가 아닙니다. 음식은 정보입니다. 유전자 스위치를 켜거나 끌 수 있고, 호르몬 분비를 자극하거나 억제하고, 장내 미생물 분포에도 영향을 줍니다. 특정 영양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다이어트는 체중감량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는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을 오히려 해칠 수 있습니다.
판단은 우리 시청자들이 해야 하는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 균형 있는 건강지식을 얻기가 만만치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