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춘천시 중앙로 춘천시보건소. 아침부터 내리쬐는 초여름 햇살은 나뭇잎을 담금질하고 사람들로 가득한 주차장마당은 장날 같았다.
오늘은 의료진을 태운 라파엘 이동클리닉 진료차량이 병원. 의사들은 차안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사람들은 줄을 섰다.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다. 표정이 밝다. 병원비는 무료다. 나눔과 봉사를 위한 축제에 많은 기관 단체가 참가했다. 안내하는 보건소직들, 119소방서 체험차량, 적십자단체, 한국실명예방재단 등이 외국인과 다문화가족들을 위해 제몫을 다하느라 바빴다.
외국인 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다. 외국인들의 참담한 의료실태를 전해들은 서울의대 가톨릭교수회가 이들을 돕고자 1997년 설립했다. 라파엘클리닉 의사들은 일요일도 쉬지 않고 소외계층들을 위한 봉사를 펼쳐 ‘하얀 가운을 입은 천사’ 라 불린다. 나무그늘엔 보물을 품은 듯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와 졸린 눈으로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가 있었다. 춘천시 서면 서동주(74)씨. “우리 며느리는 베트남에서 왔는데 귀가 아파서 진료 받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쁜 손자를 안겨줬으니 이제 난 죽어도 여한이 없지 암.” 중국어 강사 엄마를 둔 동춘천초교 5학년 김보아 양은 “엄마가 춘천시 명예통역관이에요. 119소방차 연기체험실에서 연기 피하는 방법도 배우고 지진도 체험했어요.” 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노란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에게 진료카드를 제출하고 내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등이 쓰여 있는 차 옆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산부인과 차 앞에 다문화주부들이 많았다. 춘천시 동산면 강인옥(조선족)씨는 “아이들이 셋인데 무료라서 암검진 받을 왔어요, 농사짓는 남편 수입으로 애들 셋 기우기 힘들어요.”라고 한다. 아마르산나(20.몽골)씨는 산부인과 진료를 받고 친정엄마와 함께 안과로 가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가 눈이 충혈 되고 아프다고 해서 왔어요. 몽골은 안과가 별로 없어요. 여기 온 김에 병명이라도 제대로 알고 치료했으면 좋겠어요.” 다들 사연은 다르지만 이 행사를 고마워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옷 두 개에 천원, 자 말말 잘하면 공짜” 마당 한구석엔 보건소직원들이 내 놓은 알롤달록 한 옷, 아이들 동화책, 신발 등이 수북이 쌓였다. 아기를 안고 온 다문화 엄마가 아기 옷 몇 개를 고르자 직원은 짐짓 모른 체 천원만 받고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 필리핀 엄마는 벌써부터 이 옷 입힐 아기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점심시간이 되자 보건소 마당에 자장면 파티가 열렸다. 적십자봉사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장면을 장만했다. 정말 축제답다. 삼삼오오 자장면을 먹는 사람들을 보니 예전 동네잔치가 생각났다. 한데 어울려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것, 바로 가족이다.
라파엘클리닉이 다문화가족, 북한이탈주민,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해 건강축제를 여는 까닭은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지구촌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몸과 영혼이 모두 사랑스러웠던 오드리 헵번은 “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다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다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라. 네가 나이가 들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발견하면,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라고 말했다. 진정한 축제는 모두가 행복할 때 가능하다. 오늘 행사가 가난과 소외로 건강과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여는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
강원가정복지신문[2012년 5월 15일] -김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