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클리닉, 서울 성북구 새 진료소로 이전… 서울대교구 건물 무상 임대
찜통 같은 여름에는 부채질하느라 환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약국에서는 약이 부족하다고 소리치고, 계단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빽빽이 줄 서 있었다. 겨울에는 의료진과 봉사자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를 견뎠고, 난로에 손을 녹여가며 처방전을 작성했다.
17년 동안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복도 진료소’에서 외국인 노동자 18만여 명을 진료해온 라파엘클리닉(대표이사 안규리)이 새 진료소를 갖게 됐다.
서울시 성북구 창경궁로 43길 7번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라파엘클리닉은 14일 외과를 시작으로 내과, 정신건강의학과, 피부과 등을 개원한다. 축복식은 5월 24일 오후 2시 염수정(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다.
‘라파엘센터’로 문을 여는 새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대지면적 398.4㎡에 연면적 1177㎡다. 쾌적한 환경에서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진료실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역민들과 다양한 문화를 나눌 수 있는 공연장도 마련했다. 1층에는 라파엘클리닉의 산파 역할을 한 고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흉상을 세울 계획이다. 진료가 없는 평일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북카페와 ‘라파엘 아카데미’도 운영한다.
2012년 서울대교구가 새 진료소를 무상 임대해주기로 결정한 후, 봉사자와 후원자들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리모델링 기금으로 내놨다. 벽돌 한 장, 창문 하나 모두 후원자들 도움으로 채워넣었다. 피아니스트 노영심(마리보나)씨는 기금 마련을 위해 공연 릴레이를 열었고, 가수 이문세씨도 ‘라파엘클리닉 돕기 숲속음악회’를 마련했다. 김승회(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재능기부로 설계를 맡아줬다.
초창기, 마이너스 통장으로 약품을 충당해온 안규리(아기 예수의 데레사, 서울대 의대) 교수는 “환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의료 봉사자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개인적 공간이 생겨 기쁘다”며 “고 김수환 추기경이 남기신 사랑의 선물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라파엘클리닉 인터내셔널 손정화(데레사) 사무국장은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면서 “라파엘센터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마음도 치유하는, 살아 있는 다문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라파엘클리닉은 1958년 서울대 의대 가톨릭학생회가 도시 빈민들을 위해 마련한 무료진료소가 모태가 됐다. 그러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96년 파키스탄 사형수 두 명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명운동을 펼친 게 라파엘클리닉이 문을 여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2014.04.13 | 평화신문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