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클리닉 13일 마지막 진료..이달 새 건물로 이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강당 건물 4층 복도 입구에는 각기 다른 말을 쓰는 100여 명의 이주민들이 모여앉아 웅성웅성 복잡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4층 계단을 오르자마자 맞닥뜨린 풍경은 흡사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어느 시골 버스터미널 대합실을 연상케했다.
좁은 복도에 마련된 진료소는 입구에서 나눠준 주먹밥을 먹으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과 의사 앞에서 손짓 발짓으로 아픈 곳을 설명하는 사람들, 그 사이를 오가며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들로 북적거렸다.
약품과 탈지면 등이 들어있는 철제 캐비닛, 겨울에 쓰던 난로, 약품 상자 등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앉은 모습은 전장에 임시로 마련된 야전병원처럼 보였다.
“000 씨, 이쪽으로 오세요” 하는 안내의 목소리가 고함처럼 울리자, 호명된 남자가 일어나 복도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좁은 복도의 벽 앞에는 책상을 놓고 띄엄띄엄 흰 가운을 입은 젊은이들이 앉아 있었고, 불려간 남자는 이 중 한 명에게 안내됐다. 흰 가운의 젊은이들은 서울대 의대 학생들이었다.
“여기, 여기…아파요.”
한국말을 잘 못하는 환자는 손짓으로 어깨와 팔, 다리를 가리키고 옷을 들춰 아픈 부위를 꺼내 보였다. 그의 팔과 다리에는 흑갈색에 가까운 반점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의대생들과의 간단한 문답으로 예진을 마친 환자는 복도 코너를 돌아 다른 쪽 복도에 있는 피부과 전문의에게 안내됐다.
전문의가 진료하는 공간 역시 학생들이 있던 공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의사는 작은 탁자 앞에서 랩톱 컴퓨터로 의료 차트를 들여다 보고 있었고, 그 옆의 간이의자에 환자가 조심스레 앉았다.
자신의 이름을 ‘칸’이라고 소개한 48세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는 심한 피부병 증상을 줄여주는 약 처방을 받았다. 그는 5년 전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해 이번이 13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사 맞고 약 먹으면 조금 낫는데, 여기 안 오면 다시 아파요.”
이국 땅에서의 고단한 삶, 그에 더해 고질적인 피부병과 싸우는 그에게 이 진료소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복도 안쪽 귀퉁이에 마련된 산부인과를 제외하고는 진료 테이블 사이에 칸막이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지난 17년간 이곳을 다녀간 이주노동자 수는 무려 18만 여명에 이른다.
일반외과와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총 20개 진료과목을 두고 이들 과목을 다 보는 대진료와 일부 과목만 진료하는 소진료로 나눠 지금까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매주 일요일 이주민들을 맞았다.
매주 이주노동자들에게 소중한 쉼터가 되어준 이 진료소는 문을 연 뒤 처음으로 자리를 옮겨 번듯한 ‘종합병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성북구 성북동1가 8번지에 마련해준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1천177㎡(356평) 규모의 건물에 독립된 진료소를 꾸미게 된 것이다. 14일 외과와 치과를 먼저 옮기고 2주 뒤 나머지 과들도 이사한다.
동성고에서 외과·치과의 마지막 진료가 이뤄진 13일 이곳을 찾은 안규리(59) 라파엘클리닉 대표(서울대 의대 교수)는 “17년 전 시작할 땐 여기까지 올 줄 상상도 못 했다”며 감회에 젖었다.
“혼자서는 못 했을텐데, 그때 같이 시작한 김 전 교수(서울대 의대)와 고찬근 신부님이 같이 버텨 주면서 학생들이 들어오고 또 누가 빠지면 누군가 그 자리를 메워주고 하니까 17년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이어졌어요. 누구 하나가 특별히 성스러운 마음이 있어서 된 게 아닙니다. 모두가 평범하지만 함께 조화를 이뤄서 오케스트라 같은 화음을 이뤄낸 것이지요.”
2014.04.14 | 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