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히메지성과 센히메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20-12-29 14:06
조회
2615
히메지성과 센히메

히메지성은 아름답다. 조형미가 뛰어나고 섬세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아름다우면서 까다로운 미인의 느낌이 있다. 일본의 수많은 성 중에서 으뜸을 셋을 꼽는데 히메지 성, 구마모토 성과 마쓰모토 성이 꼽힌다. 히메지 성은 고베에서 멀지 않다. 일본의 성은 흰 성도 있고 까만 성도 있는데 히메지 성은 흰 성이다. 밖에서 성을 보면 꼭 한 마리 흰 새가 앉아있게 보여서 ‘백로의 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성은 14세기때 지어졌는데 이후 여러 차례의 개축, 증축을 해서 현재에 이른다. 성주가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성주이었을 때 아주 군사적인 요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대망을 품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히메지를 떠나면서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다’라는 다짐이 전해온다.

히메지 성은 아주 방어적인 성이다. 넓은 해자가 있고 몇 겹의 방어적인 담이 있고 천수각에 오르는 길이 복잡하다. 외부인이 이를 오르면 곳곳에 감시의 눈이 번득이게 되어 있고 여차하면 총을 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게다가 오르막이 있는 길과 내리막의 길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구조를 모르는 침입군이라면 당연히 천수각이 높으니까 오르막 길로 갈 텐데 그쪽으로 가면 절벽을 만나 되어 있다. 방어벽에는 세모, 네모, 원 등 각각의 기하학적인 창이 보이는데 그 조형미 또한 만만치 않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인의 창’이라는 별명도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격이 여기서도 보인다.

히메지 성은 대천수각이 있고 소천수각이 있는데 나란히 서 있는 크고 작은 천수각을 보면 꼭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인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여기서도 연상이 된다.



▲히메지 성과 해자. 해자의 축대 위 흰 벽에는 기하학적인 총안들이 보인다.

총안:  몸을 숨긴 채로 총을 쏘기 위하여 성벽, 보루 따위에 뚫어 놓은 구멍



▲방어를 위한 사격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인을 위한 창이다.

히메지성에는 이 성의 여주인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여주인의 이름은 센히메(千姬)이다. 센히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이다. 그 아버지가 이에야스의 뒤를 이어 쇼균이 된 사람이다. 센히메가 나이 아홉일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서슬이 퍼럴 때였다. 그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기의 어린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다가 가장 꺼림칙하고 잠재적인 적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를 며느리로 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의 청이라고 거역할 수 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속절없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녀를 빼앗기고 말았다. 토요토미는 자기가 죽고 어린 아들의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어떻던가?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손자사위인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죽이게 된다. 이 때 센히메는 당연히 살렸다.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센히메에게 애틋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결국 그 때 스무살이었던 센히메의 재혼을 추진했다.



▲히메지 성의 대천수각과 소천수각. 꼭 어머니와 아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간택이 된 남자가 바로 히메지 성의 잘생기고 젊은 성주인 혼다였다. 아름다운 히메지성의 여주인이 된 센히메는 여기서 십 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 사이 아들도 낳았고 센히메의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세 살이 되던 해에 죽고 곧 이어 남편도 결핵으로 요절을 하는 불행이 닥쳤다. 센히메는 이 일이 첫 남편이었던 토요토미 히데요리가 질투를 해서 생긴 일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센히메는 첫 남편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히메지성의 여주인이었던 센히메. 히메지에서 살았던 10년이 센히메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이후 센히메는 남자를 멀리하고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이가 서른. 도쿠가와 가문에서는 센히메에 대한 애틋함이 어땠을까? 그 때 센히메는 자기가 있는 절에는 남자가 얼씬도 하지 않게 해달라 라는 청을 했다고 한다. 쇼군의 명령… 이 절 근처에 남자가 보이면 목을 베어라…

그 이후 매 맞는 아내들이 이 절에 도망쳐왔다고 한다. 남편이 잡으러 올 수가 없는 곳이라 가정폭력 희생자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절이 도쿄에서 멀지 않은 도케이지(東慶寺)이다. 산문이 소박하고 종각 또한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수수한 절이다. 센히메의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첫 남편인 토요토미 히데요리가 죽었을 때 그에게는 측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었다. 토요토미의 핏줄이라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데 센히메가 이 여자 아이를 양녀로 삼는 바람에 목숨을 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앗(첩)의 아이를 자기 딸로 입적시켜서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히메지성은 아주 방어적이고 냉혹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름답고 섬세하므로 어쩐지 여성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센히메 이외에도 여인의 전설이 있다.

아름다운 시녀가 있었다. 그리고 이 하녀를 연모하던 사무라이가 있었는데 이 하녀는 그 사무라이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이 남자는 앙심을 품고 가보로 간직하던 열 개의 접시 세트 중 하나를 감추고 하녀가 접시를 깨뜨리는 것을 보았다고 모함을 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여인은 경국 우물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 후 밤마다 젊은 여자 유령은 온 집을 헤매면서 없어진 접시를 찾는다는 전설이 있다. 히메지성 뜰에는 그 우물이 아직 남아있다. 호쿠사이(北齋)의 그림에는 처량한 표정으로 산발을 한 여자 유령이 한숨을 지으면서 접시를 찾고 있다. 우물에서 올라온 유령의 몸은 접시들로 되어 있는데 꼭 뱀의 모습 같다. 이야기를 곁들인 그림은 항상 재미있고 즐겁다. 전설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가도 화가의 역량이 아닐까?



▲호쿠사이 가츠시카의 그림. 우물의 여인 유령. 값진 접시를 깨뜨렸다는 누명을 쓰고 우물에 몸을 던진 하녀의 유령이다. 밤마다 우물에서 나와 없어진 접시 하나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