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베르가마의 무덤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21-02-02 13:32
조회
2467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베르가마의 무덤


베를린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는 섬이 있다. 그 중 페르가몬 박물관은 들어가보면 그 대단한 건축물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입이 벌어진다. 아니, 저걸 어떻게 옮겨 왔을까? 페르가몬이라는 이름은 옛날 고대도시인 페르가몬에서 따왔다. 고대 페르가몬에는 대단한 제우스신전이 있었다. 1870년 대 페르가몬이 발굴되면서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고대도시 페르가몬은 현재의 터키의 베르가마이다. 그 시대에는 오스만 터키가 쇠퇴하면서 유럽의 열강한테 시달리던 시기이다. 베르가마, 트로이의 발굴은 독일이 주도적으로 했는데 불평등한 계약으로 수많은 유물을 자기 나라로 반출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페르가몬의 제우스 신전 제단을 통째로 뜯어와서 과장을 조금하면 지붕만 덮은 박물관. 무샤타 궁전의 성벽, 아슈타르 문 같은 대단한 건축물 또한 통째로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페르가몬의 제우스 신전이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대단한 신전은 높이 113미터의 웅장한 신전이다. 제우스가 누구인가? 올림푸스의 주신이고 거인족(티탄)을 싸워서 물리치고 신들의 세상을 연 주인공이다. 그 신전의 벽에는 신들과 거인들과의 싸움을 새겨두었다. 이 부조는 예술적인 완성도가 아주 뛰어난데 이 거대한 신전의 제단을 통째로 뜯어서 베를린으로 가져온 것이다. 제단은 폭이 30미터이며, 높이도 10미터를 넘는다. 좀 과장을 한다면 이 제단을 베를린에 다시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은 것이 페르가몬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제단

저렇게 엄청난 크기의 제단을 통째로 가져오다니…… 이건 욕심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욕심과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엔지니어가 한 일이다. 카를 후만(Carl Humann)이라는 독일의 엔지니어 겸 고고학자가 한 일이다. 불쌍한 페르가몬(베르가마)…… 저 대단한 고대 그리스의 신전을 통째로 빼앗기다니……

가장 훌륭한 신전을 눈뜨고 코 베어가듯 속절없이 빼앗긴 베르가마는 그럼 어떤 모습일까? 베르가마의 아크로폴리스에는 모든 것이 뙤약볕 아래 하염없이 서 있다. 제우스 신전의 잔해들은 좀 남아있어서 아주 볼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전 밑에는 아주 가파른 경사가 있는데 거기 원형 극장이 있다. 가파른 만큼 많은 사람이 무대에 가깝게 앉아있을 수 있다.

▲ 고대 페르가몬 제우스 신전의 터. 대단한 제단은 베를린에 가 있지만, 약간의 기둥은 남아있다. 현 터키의 베르가마.

아크로폴리스에는 많지 않은 여행자들이 있는데 기둥의 그림자에 그냥 오랜 시간 앉아있다. 천천히 느끼면서 하는 여행의 모습이다.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고, 시간은 별로 없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여행을 우리는 언제나 면할 수 있을까?

이곳에는 고대 로마시대의 검투사의 복장을 하고 잇는 조각이 하나 서있다. 머리와 다리는 잃은 몸통만 남아있는 토르소가 된 조각이다. 싱거운 여행자는 그 조각 바로 뒤에 서면 자기가 로마의 장군, 또는 검투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많은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시저가 된 것처럼 연설을 하는 여행자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의 재미 하나를 선사한다. 대리석 조각을 만지지만 않았으면 더 좋을 텐데……


▲ 허물어진 제우스 신전의 일부. 기둥 사이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여행자들이 있다.


▲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본 베르가마 시가지.


▲ 볼 것이 아주 많은 곳이 아니라 이런 싱거운 여행자도 보인다. 고대 로마 검투사의 복장 조각에 상의를 벗고 장군처럼 연설하는 여행객.

베르가마 아크로폴리스의 한 구석에는 작은 묘가 하나 있다. 카를 후만의 무덤이다. 바로 이 곳의 제우스 신전을 통째로 뜯어 간 사람이다. 그 사람 때문에 베를린에 페르가몬 박물관이 생겼다. 이 사람은 베르가마(페르가몬)을 나름대로 너무 사랑해서 죽으면 베르가마에 묻어 달라고 했단다. 결국 여기 묻혀있다. 현지인이 했던 말이 여행자의 마음을 울린다. “He got everything and we have his bones.”(그 사람은 여기 모든 것을 가져갔어요. 우리는 그 사람 뼈를 가지고 있네요.)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에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박공 부조들이 있다. 엘진이라는 영국 귀족의 소행이다. 그의 이름을 따라 Elgine Marble이라고 부른다. 그리스가 돌려달라고 해도 영국은 못들은 척 한다. 아테네에 있었으면 다 파괴될 것을 우리가 잘 보관하고 있지 않으냐. 엘진이 파르테논 부조를 미롯해서 많은 유물을 그리스에서 가져올 때 배 세 척을 띄웠는데 런던에 돌아 온 것은 두 척이었다. 하나는 침몰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엘진은 아테네를 너무 사랑해서 거기 묻혔을까? 독일인 엔지니어는 나름 순수한 것일까? ‘사랑해서 납치했다’ 이거 어디서 듣던 말 아닌가?


▲ 베르가마 아크로폴리스의 한 구석에 있는 카를 후만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