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무료진료 ‘라파엘 클리닉’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아플 때 찾아갈 병원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서울 동숭동 서울의대 분관에 사무실을 둔 라파엘 클리닉은 내국인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병원이다. 지난 1997년 개원한 이래 7년째 외국인 노동자만을 진료해 왔기 때문이다. 매달 첫째·넷째주 일요일 오후에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강당 복도에서 열리는 이 병원의 무료 진료소에는 한번에 200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힘든 노동에 다치거나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온다.

라파엘 클리닉은 서울의대 가톨릭교수회 소속이던 안규리 교수(신장내과)의 제안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안 교수는 96년 살인혐의로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복역중이던 두명의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를 만나 이들의 비참한 의료실태를 보고 온 뒤 무료진료소 개설을 제안했다. 주머니를 털어 기금을 마련하고 동료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서울대 가톨릭학생회 소속 의대생들도 뜻을 함께 하겠다며 나섰고 천주교 신부들도 지원에 참여했다. 그해 4월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한켠을 빌려 첫 진료를 열었다. 진료소장에는 안교수의 스승이자 서울대병원 생리학교실을 담당하는 김전 교수가 맡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쓰던 의료기구와 집기도구를 빌려다 사용하고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약품도 지원받았다.

무료진료는 물론 약까지 공짜로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달만에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좀더 넓은 장소를 찾아 근처의 대신학교 성신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병원 이름을 ‘라파엘 클리닉’으로 바꿨다. ‘라파엘’은 성경에 나오는 ‘치유의 천사’를 가리킨다. 98년에는 지금의 동성고 강당으로 진료소를 옮기고 옷·쌀 등을 주는 구호활동과 인권 상담도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 병원 의료진을 만나고 간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5만여명. 서울대병원 뿐 아니라 고대·이대 병원에서도 의사들이 함께 하겠다는 뜻을 비쳐 모두 200여명의 의사가 동참하고 있다. 격주 진료에는 이중 25명의 의사가 고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처음 내과만으로 시작한 진료과목도 늘어 지금은 산부인과·신경외과·안과·치과 등 17개 과로 늘었다. 2차 진료를 맡고 있는 협력 병원만도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10여개에 달해, 라파엘 클리닉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아플 때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종합병원 노릇을 하고 있다. 매달 1천4원씩 내는 ‘천사회원’과 1만1천4원씩 내는 ‘대천사회원’이 병원의 재정적 버팀목이지만,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사회인과 의료인·단체 등도 도움을 주고 있다. 안 교수는 “앞으로 의대생 등 젊은 의료인들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에게 ‘먼저 찾아가는’ 진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02)763-7595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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