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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 같은 추기경과의 30년 일화, 그 속에 담긴 감동과 가르침

김수환 추기경과의 추억 / 오덕주 지음 / 에피파니 / 2만 3000원

2019.02.24 발행 [1503호]

 

▲ 서울 명동대성당 주교관 마당에서 열린 바자 때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활짝 웃는 오덕주 회장(추기경 왼쪽). 한언출판사 제공

모든 이의 아버지가 돼준 김수환 추기경의 운구 차량이 수많은 인파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 명동대성당을 빠져나가던 날. 추기경을 친정아버지처럼 여기며 30년 동안 가까이서 따랐던 오덕주(데레사, 85) 전 한국가톨릭여성연합회 회장은 입원 중이었다. 병실에서 촛불 하나 켜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울음소리에 주치의도 놀라 달려왔다. “아, 우리 추기경님….”
김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자택에서 만난 오 회장은 “저는 지금도 추기경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것만 같다”며 “추기경님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그러다가도 기억으로밖에 떠올릴 길 없는 추기경을 회상할 때엔 숙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추기경님의 영성은 제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인간을 그토록 깊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분. 그분과 함께 평신도로서 교회 일을 한 시간은 하느님 은총이었습니다.”
그의 생생한 기억이 「김수환 추기경과의 추억」에 고스란히 담겨 출간됐다. 오 회장이 시력에 무리가 올 정도로 꼬박 1년간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썼다. 30년 넘게 가까이서 보고 느꼈던 추기경과의 기억, 아름다운 일화 등 오 회장만이 간직한 기억들을 상세히 담았다. “자칫 ‘추기경님께 누가 되진 않을까?’ 망설였다”고 했지만, 기록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중요한 자산이다.
1960년대 서울 국제부인회를 창설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업에 열중했던 오 회장은 작고 누추한 곳도 마다치 않고 찾는 김 추기경의 모습에 감화됐다. 이후 그는 한국가톨릭여성연합회장,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이사 및 아시아 태평양지구 회장, 요셉의원 후원회장 등을 역임하며 여성 평신도 지도자로 여성 인권 신장과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 모색과 실천, 지원에 쉼 없이 헌신했다.
책에는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면모와 마음속 깊이 지녔던 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무더운 작업실에서 김수환 추기경 휘호가 담긴 도자기 100점이 탄생한 배경, “나를 무슨 전염병 환자로 아는 모양이야”라며 외로움을 내비치던 추기경과의 대화도 눈에 띈다. 또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두고두고 칭찬했던 김 추기경과의 추억도 소개되고 있다.
당시 오 회장은 2830명의 한복 차림의 여교우들이 우산을 펴고 성합을 든 사제를 안내토록 아이디어를 내고, 모금에도 힘을 보탰다. “함께해주신 수많은 사제와 평신도가 계셨기에 할 수 있었죠. 추기경님께서 교회 구성원 모두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존중해주셨기에 큰일도 순조롭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뵙기만 해도 영성적인 힘이 생기는 추기경님은 교회 영성의 원천이셨죠.”
김 추기경과 관련한 오 회장 개인의 애경사 사연도 연이어 등장한다. 그는 1987년 KAL기 사고로 언니를 잃고, 이후 아들과 여동생도 먼저 떠나보냈다. 김 추기경은 실의에 빠진 그에게 위로와 격려를 잊지 않았다. 또 외조카 강우일 주교가 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될 때에는 곁에서 따스한 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추기경님은 ‘여성은 남성보다 더 영성적’이라며 여성들의 마음도 깊이 헤아리고 지원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추기경님과 함께 정말 기쁘게 교회 일을 했습니다. 작은 일을 하면서 ‘아, 우리 추기경님이라면 이렇게 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만 지닌다면, 그것이 곧 추기경님 영성을 온전히 이어나가는 일이 된다고 봅니다. 추기경님께서 책 나온 것을 보시고 ‘허허허’ 하고 빙그레 웃어주시겠죠?”
오 회장은 책 판매 수익금을 모두 라파엘클리닉에 기부할 계획이다. 출판기념회는 28일 오후 1시 서울 라파엘센터에서 열린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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