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지난 17년 동안 매주 일요일 이주노동자들을 무료로 진료해온 ‘라파엘클리닉’의 역사에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열정이 깃들어 있다.

가장 먼저 깃발을 들어올린 이는 서울대 의대 안규리(59) 교수였다.

가톨릭교수회에서 활동하던 안 교수를 움직인 것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1996년 김 추기경으로부터 파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사형수로 붙잡혀 있다는 얘길 듣고 그들을 면회한 안 교수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의료 봉사를 고민하게 됐다.

“이주노동자들을 처음 만나고는 깜짝 놀랐죠. 22만 명이나 그런 의료 사각지대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저 (봉사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에 불타서 궤짝 두 개에 약을 싸갖고 혜화동 성당에 들어가 한 켠에서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했죠.”

최근 연합뉴스 기자를 만난 안 교수는 17년 전의 아련한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당시 가톨릭교수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김 전 전(前) 서울대 생리학과 교수와 가톨릭학생회 소속 4명의 의대생들과 함께 혜화동 성당에서 진료를 시작하자 이주노동자 30여 명이 모여들었다.

두 주가 지나자 환자가 70명으로 늘면서 공간이 부족해졌고, 김 추기경의 배려로 옆에 있는 가톨릭대 성신교정 안의 한 건물 공간을 쓰게 됐다.

“성신교정에서 달랑 내과 하나로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선·후배, 동료 의사들이 뒤따라 들어와서 내과 책상 뒤에 이비인후과, 안과 등등을 계속 차리는 거예요. 또 병원을 개업한 선후배들이 안 쓰는 집기들을 내주고 하면서 진료소가 점점 커졌죠. 1998년 여름에 동성고로 이사했는데, 성신교정에서 트럭 세 대분의 짐을 싣고 나왔어요. 그 기적 같은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후 동성고 강당을 둘러싼 복도 4층 공간에 차려진 진료소는 그 규모가 점점 불어 지금은 적게는 10개, 크게는 20개 진료과목에서 매월 1천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꾸준히 참여하는 의사만 200여 명이고 간호사, 약사 등을 포함한 의료봉사자 수는 총 600명에 달한다. 이들이 교대로 나오기 때문에 진료소는 지난 17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절 연휴가 겹치는 날에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문을 열 수 있었다.

생전에 늘 이 복도 진료소에 마음을 쓴 김 추기경은 2009년 2월 23일 선종한 뒤 라파엘클리닉 후원 계좌에 340만 원을 남겼다. 이어 김 추기경과 함께 주교 시절부터 라파엘클리닉을 안타까이 여기던 염수정 추기경의 뜻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새 진료소 공간 마련에 힘을 보탰다.

현재 진료소가 있는 혜화동에서 멀지 않은 성북구 성북동1가 8번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1천177㎡(356평) 규모의 건물을 구해 라파엘클리닉에 무상으로 임대해 주기로 했다. 건물 리모델링 공사도 여러 기업과 개인 봉사자들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새 진료소 건물 1층에는 김 추기경을 기념하는 ‘메모리월’도 꾸며진다.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우린 아직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새 공간에서 더 멋진 연주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설렙니다.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단순히 진료소가 아니라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아카데미’로 만들려고 해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건강 강좌, 환우들을 위한 건강교실, 다양한 이주민들이 어울리는 문화공간, 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하는 교육 등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안 교수는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면서도 라파엘클리닉이 쓰게 될 새로운 역사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2014.04.14 | 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