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제 기억 속에 가장 강렬히 남은 사건은, 고작 제가 군대에서 제대를 한 것입니다. 제가 제대하고 한 주가 지나서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습니다. 덕분에 제 바로 밑에 군인 아저씨들은 제대가 미루어졌지요. 제게 남은 1994년의 인상은 그러한데, 그 해가 가장 더웠다는군요. 기억해 보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희 집에 에어컨이 처음 들어온 해도 1994년이었으니까요.
20년 전의 더위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은, 그 해의 고생을 기억 어딘가에 묻었기 때문이겠지요. 올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뜨거움이 지나갔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기가 스러지고, 이제는 추석을 지나 가을이 정취를 누리는 시간입니다.
자연은 그렇게 지나감의 연속으로 ‘현재’를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자연은 잊음과 새로움에 익숙하건만 우리네 삶은 기억으로 후회를 붙잡고, 미련으로 현재를 망각합니다. 행복한 일도 험난한 일도 다 지나감의 자락에 걸린 무엇일 것입니다. 정작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무쌍한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의미’여야 합니다.
라파엘 가족 여러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가장 의미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지금에 감사하며, 우리의 삶을 그리고 함께 하는 이웃들의 삶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