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혜화동 동성고 강당 4층. 가나 출신 젊은이 나슈 멘사(30세)는 이날 처음 “라파엘클리닉”을 찾아왔다. 한국생활 2년째인 그는 안양의 한 공장에서 하루에 16시간씩 중노동을 해오다가 한 달 전부터 허리와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일요일 오후 라파엘클리닉에서 진료가 있는 날이면 나슈와 같이 진료를 받고자 찾아오는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로 강당이 붐빈다.
현재 우리 나라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 20만 6500명 중 이른바 “불법체류자인” 60%정도가 기본 인권을 유린당한 채 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 대다수가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가톨릭 교수회와 학생회에서 인권위원회로부터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참상을 전해듣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종합보호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김전교수와 안규리교수를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의료봉사 활동을 계획하게 되었다.
1997년 4월,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40명 안팎의 인원으로 첫 진료를 시작했을 때는 환자들에게 줄 약품조차 변변히 없었다. 그런데 마침 대한적십자사에서 약품을 지원해주고,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많은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총무일을 맡아온 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모두들 얼마 못 갈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우리는 누군가가 꼭 해야 될 일이라는 생각에 진료활동을 계속 했죠.” 이제 라파엘클리닉은 의사 35명과 간호사, 자원봉사까지 합해 600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일반외과, 정형외과, 내과만 있었는데 현재는 18개 과로 늘었다.
지금까지 라파엘클리닉을 거쳐간 환자 수는 1만 명 정도. 처음에는 필리핀근로자들 중심으로 이용되다가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은 중국, 방글라데시, 페루, 파키스탄 근로자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 의해 생긴 만성질환이나, 예방접종, 출산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수술이 필요할 경우에는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된다.
라파엘클리닉의 소장 김전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와 다른 봉사자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에도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다.
돕고자 하는 의료봉사자들과 또 그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기뻐하는 외국인 근로자간의 따뜻한 만남이 사회 전역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해본다.
―홍 일 기자(hongil@doo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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