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프라하의 천문시계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20-02-21 10:40
조회
2656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프라하의 천문시계 

프라하는 환상적인 도시이다. 볼 것도 많고 즐길 곳도 많다. 구 시청 주변은 여행자가 항상 붐비는 곳이다. 구 시청사에는 그 유명한 천문시계가 있다. 1410년에 제작 되었다니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만들어 진 것인데, 현재까지 작동하는 것 중에서는 제일 오래 된 것이란다. 700년도 넘었는데 끄떡없이 시간을 보여준다. 물론 중간중간에 고장도 나고 수리도 했단다. 보헤미아의 정밀 공업은 중세부터 정평이 나있다. 20세기 초, 체코제 기관총은 세계를 석권하였는데 이런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프라하의 천문시계. 맨 위에는 해와 달의 위치와 천문 정보를 보여주고 두 번째는 매 시간 사도들의 행진을 보여준다. 맨 밑에는 달력 눈금판이라고 하는데,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이 천문시계에 여행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이것이 아름답고 오래되기도 했지만 매 시각 정시에 보여주는 재미있는 인형들의 움직임이 큰 역할을 한다. 시계 옆에는 인형이 넷이 있다. 우선 오른 쪽의 둘을 보면 해골이 보인다. 해골이 들고 있는 것은 모래시계이다. 그 옆에 있는 인형은 터번을 쓰고 있다. 그 당시 오스만 터키는 동유럽을 지배하고 있었고 중부 유럽도 상당히 압박을 받고 있던 시절이다. 따라서 터번을 쓰고 있는 터키 사람은 힘 센 사람, 즉 깡패를 상징한다. 반대편 가장 왼쪽의 인형은 거울을 보고 있다. 멋쟁이, 잘생긴 사람, 그리고 허영을 뜻하는 인형이다. 그 옆의 인형은 돈주머니를 들고 있다. 잘 보면 좀 욕심이 있어 보인다. 바로 부자이다.
천문시계의 위에는 네 개의 인형이 있다. 허영에 들 뜬 멋쟁이, 욕심 많은 부자, 힘센 깡패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있다.

위의 네 인형은 매 시간 정각이 되면 소리가 나면서 해골이 슬슬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모래시계를 보여준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나를 따라 가자.’는 뜻이다. 그러면 나머지 셋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든다. ‘싫어요.’ ‘나는 죽기 싫어요.’ 이런 뜻인 것 같아 보는 사람의 웃음을 자아낸다. 죽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모인 사람들은 다들 카메라를 꺼내 찍기 시작하는데 웃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자못 심각하다. “그냥 보고 웃으면 되는 거에요.”라고 해주고 싶다.
천문시계의 인형을 더 잘 보이게 찍은 사진. 거울을 들고 있는 잘생긴 멋쟁이와 돈 주머니를 들고 있는 허영심 많고 탐욕스러운 부자.

매 정시에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죽음과 세 부류의 인간들이 옥신각신 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포인트. 좀 웃으면서 봐도 좋을 텐데 대부분의 여행자는 심각하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모래시계와 해골은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언젠가는 죽는 존재’임을 상징했다. ‘교만하지 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이런 상징을 많이 쓴다. ‘Hans Baldung’이라는 화가가 그린 ‘세 시기의 여자와 죽음’이라는 그림을 보면 어린 아이가 있고 젊은 여인, 늙은 여인과 해골의 순서로 서 있다. 해골은 당연히 모래시계를 들고 있다. 해골은 나이 든 여인의 팔짱을 낀다. “이제 시간이 되었네. 가십시다.” 하는데 저 할머니는 갈 생각이 없다. 아주 단호한 표정이 보인다. 죽음을 따라 가는 대신에 젊은 여인의 옷깃을 꽉 잡고 젊은 여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젊은 여인은 이것이 달갑지 않다. 아무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해골은 젊은 여인과 늙은 여인의 실랑이를 짐짓 못 본 체한다.






Hans Baldung: Three Ages and Death. 1510 Museo del Prado. Madrid. 아무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누구든 결국은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다.

 

 

 

 

 

 

 

 

 

 

 

 

 

 

 

 

 

사람구경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천문시계가 있는 구 시청사를 올라 가기를 권한다. 그 곳에서 내려다 보면 구름같이 모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 구경도 제법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