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인터뷰]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들과 - 김웅한 교수(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16-06-29 16:55
조회
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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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제6회 ‘서울대학교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김웅한 교수는 1999년부터 17년간 의료 소외 계층 소아심장병 환아를 위해 국내 120여건, 해외 580여건을 수술하며 어린 생명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라파엘인터내셔널과는 2008년 첫 초청수술을 시작으로 100여 명에 달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하였습니다. 또한, 네팔 라파엘 봉사단장을 맡아 네팔 보건 의료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의료봉사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김웅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CaSA로 시작된 봉사하는 삶
의료 봉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의대 본과에 진학하면서부터입니다. 원래 의예과 때부터 활동하던 의대산악회 동아리 방 바로 옆방이 CaSA(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가톨릭학생회) 동아리 방이었는데, 제가 가톨릭 신자이고 CaSA에 친구들이 많다보니 자연히 준회원처럼 지내다가 점점 비중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CaSA는 부담이 많은 동아리였는데, 친구들이 저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힘든 기억(?)은 없고, 재미있게 놀던 기억만 있습니다. 너무나 좋은 동기들과 선배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때 CaSA는 천주교 구로동 교회에서 주말 진료 봉사를 하였는데, 당시의 도시빈민가의 소외된 지역에 대한 기억이 제 평생 동안 마음속에 화두로 남아있습니다.

* 라파엘 첫 초청수술 환아, 샤옥도돔
샤옥도돔은 라파엘 몽골 심장병 수술의 인연을 맺게 해 준 소중한 끈입니다. 2007년 라파엘 몽골 의료캠프를 통해 만나게 된 샤옥도돔은 수술 시기가 많이 늦어진데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도 위험할 정도로 상태가 위중하였습니다. 어렵게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막상 검사를 해보니 몽골의 진단과 달라 수술 위험성이 너무 높았습니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서 깊이 고민하다가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수술을 결심하였고, 다행히 아이가 잘 견뎌주었습니다. 지금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역시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샤옥도돔은 저에게 소중한 깨우침을 준 아이입니다.

* 힘들지만 가야하는 길
현지에서 심장수술을 하면서 보고 느끼게 되는 선천성 심장병의 실태와 현지 사정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2000년대 첫 수술을 한 중국 하얼빈 지역이 그러했고, 우즈베키스탄, 몽골, 네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현실도 그러했습니다. 보지 않으면 결코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심장병이 있는 아이들은 모든 치료에서 소외된 채 그저 죽는 순간만을 기다립니다. 외국의 많은 심장수술팀이 왜 현지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현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지에서 수술을 하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장비, 약품, 시설 등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의료진에게는 극단의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환아가 회복하지 못하면 귀국하는 다음 달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언제나 큰 부담이었습니다.

* 변화하는 몽골
몽골 의료진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은 의사로서의 동기 부여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몽골의 의료진들은 우리에게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느냐고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건강해지는 아이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현지 의료진과의 신뢰가 구축되었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들의 희망이라는 것을 함께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현지의 의료진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역량을 더 강화하기 위해 초청연수를 실시하여 지속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아심장병 수술 지원 사업은 현지 의료인에 의한 치료가 최종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수술장을 구축하고, 현지교육(협진, 공동수술, 중환자실 관리, 주기적 예후 관리 등)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지 의료인에 의해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현지 의료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고 의존성을 키우는 기형적인 의료 환경을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있습니다.

* 한 아이, 한 가족을 지키는 일
소아심장병 수술은 곧 죽을 것 같은 아이도 간단한 수술로 기적같이 되살아납니다. 한국에서의 생존율은 98%에 달합니다. 하지만 의료 낙후 지역의 아이들은 수술 시기를 놓쳐 죽고 맙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이 일은 제가 평생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은 매번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의 치료비를 대느라 경제난에 허덕이며 부부사이까지 틀어졌다가 심장 수술 후에 저축도 하고, 가정도 행복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 마음도 참 행복했습니다.

* 네팔 이야기
네팔은 세계 최빈국입니다. 최근에는 대지진까지 겪으며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도 묵묵히 일하는 훌륭한 네팔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 때 잡아주고 같이 일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가 실내공기 오염과 대기환경 오염으로 국제기구에서 평가하는 가장 심각한 호흡기질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러니를 조금씩 해결하기 위하여 굴뚝 지원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의료진을 교육하고 일차 의료체계와 보건 위생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 함께 사는 것
라파엘이 제 인생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끝없이 아래로 향하셨던 故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을 기억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항상 라파엘은 저를 끊임없이 배우게 합니다.
저 자신의 의지는 절대 아니고 주위의 좋은 분들에게 묻어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제가 하기 싫어진대도 주위 사람들이 원한다면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 같은 것도 없고, 그냥 더불어 같이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들과 나누면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