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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어려울 때면 기적같은 도움…19년 동안 문 닫은적 한번도 없어”

1996년 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안규리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이 재수사를 요청해 화제가 되었던 파키스탄 국적의 사형수 두 명을 면회한다. 여기서 안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알게 되고, 곧 의사로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래서 설립한 것이 라파엘클리닉. 주변 의료진 몇 사람과 함께 시작한 ‘길거리 진료’가 19년이 지난 지금 국제적인 활동까지 하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인권상(국가인권위원회)과 아산상 대상(아산재단) 등을 받았는가 하면 지난주에는 포스코청암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

라파엘클리닉의 대표 안규리 교수를 만났다. 라파엘의 대표이기 이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신장 전문의이자 이종장기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올해의 여성상(한국여성단체협의회)과 몽골 국민 북극성 의사훈장(몽골 대통령), 소리 없는 영웅상(세계이식학회) 등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어떻게 저렇게 깊을 수 있을까?” 그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이번의 만남에도 어김이 없었다. 라파엘 대천사(大天使)의 이미지가 겹치는 그에게 포스코청암상 수상소감부터 물었다.

◆쉽고 당연한 일’로 받은 상(賞)?

김병준: 라파엘클리닉이 포스코청암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 축하드린다.

안규리: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일이라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만 진료한다. 일주일 내내 봉사하는 분들이나 기관도 많은데, 그 7분의 1을 하고 상을 받았다. 쑥스럽다.

김병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7분의 1도 쉬거나 즐긴다. 7분의 1을 일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규리: 진료는 의료진에 있어 당연한 일이자 쉬운 일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진료도 생각하기에 따라 재미있고 도전적일 수 있다. 거듭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게 미안하다. 미안한 만큼 앞으로 더 잘하고, 상금도 귀하게 쓰겠다.

김병준: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 방금 상금(2억원)도 귀하게 쓴다고 하셨는데….

안규리: 작게 시작한 일이 이만큼 커졌다. 해야 할 일도 많아지고 있다. 이제 그만둘 수도 없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게 될까, 또 어떻게 하면 이 일이 의료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될까를 놓고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다. 이럴 때 이 상을 받았다. 상금은 당연히 이러한 고민과 관련하여 쓰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일을 위한 첫 단추가 될 것 같다.

김병준: 상을 제대로 주고, 제대로 받은 것 같다. 그런데 말씀 중에 의료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한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안규리: 예를 들어 보자. 한 해 1만6천 명 정도의 외국인이 라파엘을 찾는다. 지금까지 다녀간 환자가 20만 명이 넘는다. 이들 환자들의 질환 패턴을 잘 분석하면 국적이나 문화, 식생활 습관 등에 따른 차이를 알 수 있다. 라파엘을 찾는 환자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의 질병관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김병준: 그런 일을 하는 의료기관이나 연구기관들이 많이 있나?

안규리: 거의 없다. 일본의 해외원조 관련기관 일부가 수집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따뜻한 나라’

김병준: 라파엘클리닉을 둘러보았다. 민간이 운영하는 진료소,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료진료 하는 곳으로는 규모가 상당하다.

안규리: 2년 전 이쪽으로 이사를 했다. 지하 1층, 지상 5층에 연면적이 350평 조금 넘는다.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다.

김병준: 그럼 그전에는?

안규리: 1997년 4월, 서울 혜화동성당 백동관에서 시작했다. 그 몇 달 뒤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한 건물로 옮겼고, 그로부터 1년 뒤 다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의 도움으로 동성고등학교 4층 강당으로 옮겨 진료를 했다.

김병준: 자체의 진료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 감격스러웠겠다.

안규리: 그렇다. 학생들이 쓰던 궤짝 두 개와 간이의자 몇 개로 시작한 ‘길거리 진료’였다. 그게 첫 이사를 하면서 리어카 두 대 분량으로 늘어나고, 또 늘어나고…. 그러면서 19년이 지나 여기까지 왔다.

김병준: 그만큼 환자도 많아졌고, 일도 많이 했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안규리: 앞서 말한 대로 일요일만 진료를 하는데, 진료일 하루 평균 320명, 한 해 약 1만6천 명이 다녀간다.

김병준: 의료진이나 지원인력도 많아야겠다.

안규리: 서울의대 교수와 의대생 몇 명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대, 고려대, 건국대 의대 교수 등 400명의 의사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며 17개 진료과목에 자원봉사를 한다. 약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치위생사, 물리치료사 등도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고, 보건의료계열 학생도 3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병준: 의료진이 아닌 일반 자원봉사자들도 많은 것 같은데….

안규리: 진료일마다 100여 명의 일반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준다. 관리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관리업무를, 통역과 안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일을, 또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연주로 환자들을 위로한다. 모두들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고 있다.

김병준: 주로 어떤 환자들이 많이 오나?

안규리: 국적은 중국, 필리핀, 몽골, 방글라데시 등 다양하다. 또 이런저런 이유로 건강보험이 없는 환자들이 많이 온다. 그나마 언어소통이 가능할 것으로 믿고 오는 환자도 있고, 일요일이 아니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환자들도 있다.

김병준: 언어소통은 어떻게 하나?

안규리: 한국어와 영어로 소통하기도 하고 통역 자원봉사자나 전화통역을 이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문화적 소통이다. 통증에도 ‘쑤신다’ ‘찌른다’ ‘뻐근하다’ 등의 여러 가지 표현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통역이 되어도 그 정도나 증상을 알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와 연계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손짓 발짓 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다.

김병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안규리: 더욱 답답한 일도 많다. 응급상황이라 보호자가 필요한데 가족이 곁에 없는 경우, 또 예방적 조치를 하면 좋은데 그럴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하는 것 등이다.

김병준: 중증환자의 경우 어떻게 하나? 이들까지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안규리: 중증 정도에 따라 2차 의뢰를 한다. 60여 병원이 도와주고 있다.

김병준: 이 경우 치료비는 어떻게 하나?

안규리: 병원이 도와주기도 하고 모금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한 번도 이러한 일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따뜻한 나라이다. 모두들 험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살아있는 나라이다.

김병준: 어쨌든 운영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다. 조달하는 데 문제는 없나?

안규리: 1천500명 가까운 개인 후원자와 90여 개의 단체후원자가 있다. 또 물품과 약품을 지원해 주는 곳이 수십 곳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바보나눔, 정부의 국제협력단(KOICA) 등의 사업에도 응모한다. 또 상금을 받아쓰기도 하고 급해서 바자회를 연 적도 있다. 하지만 늘 걱정이기는 하다.

김병준: 사실 국가나 사회, 심지어 기업들을 포함한 시장주체들까지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인데….

안규리: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책도 구해서 보고…. 하지만 사회구조와 문화가 달라서인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또 조직적인 모금을 할 역량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어려울 때면 기적같이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19년 동안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

◆인도에서의 충격

김병준: 국제적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규리: 2007년 포스코 일로 인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최하위 계급인  ‘불가촉천민들'(untouchables)이 치료받는 병원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눈 수술을 받은 한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하고 있는 안대가 새까맸다. 날이 어두워 그런가 했는데 파리가 그 안대 주변에 날아다녔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김병준: 안대가 오래 되어서?

안규리: 안대를 갈아주지 않아서 새까만 것이었고, 그 안대 아래에는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환자 앞에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큰 충격이라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김병준: 그래서 설립한 것인 해외의료지원사업인가?

안규리: 그렇다.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바로 라파엘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몽골부터 시작했다.

김병준: 가서 직접 진료를 하는 것인가?

안규리: 그동안 다른 팀들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일회성 진료를 하고 오거나 약을 주고 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지속성이 떨어진다. 치료했던 환자가 다음에 가보면 증상이 악화되어 있거나 세상을 떠난 경우를 보게 된다. 따라서 라파엘 인터내셔널은 다른 방법, 즉 그 나라의 의료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김병준: 의료체계 안으로 들어간다?

안규리: 그쪽 의료진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그 나라 환자들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이들을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으로 불러들여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같이 보드카 마시고, 야채도 같이 심고, 우물도 파주었다.

김병준: 결과는?

안규리: 성공적이다. 신뢰가 쌓이면서 그쪽 의료진들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었고, 이렇게 역량이 강화된 의료진들이 다른 의료진을 위한 워크숍을 여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과거에 가지지 못했던 의료기술을 가지게 된 의료진들이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극적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오전 11시면 퇴근하던 의사들이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하기도 한다.

김병준: 그 나라에도 의과대학이 있고 인턴, 레지던트 등의 훈련과정이 있을 것 아니냐?

안규리: 의과대학이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 및 훈련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구 소련연방이 붕괴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약화되고, 또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원로의사들이 은퇴해 나가면서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김병준: 의료 이외의 분야에서도 좋은 접근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안규리: 어쨌든 라파엘이 들어가면서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그쪽 정부 역시 이러한 변화 뒤에 라파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그러다 보니 도움을 달라는 요구도 많아지고 있다. 역량이 따라가지 못해 걱정이다.

김병준: 몽골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돕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규리: 미얀마, 네팔, 필리핀으로 확대하고 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녀

김병준: 라파엘의 대표이기 이전에 콩팥 분야와 이종장기 분야 등에서 세계적인 학자이자 연구자이다. 어떻게 이 많은 일을 다 소화해 내는지 모르겠다. 결혼을 하셨더라면 아마 집에서 쫓겨났을 것 같다.

안규리: 이혼사유로 충분할 거다(웃음).

김병준: 돌아가신 부친이 몹시 아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신다면 뭐라 하실까? 매우 자랑스러워하시지 않을까?

안규리: 의사가 아픈 사람 위해 일하는 게 뭐 대수냐 하실 것 같다.

김병준: 의사 되는 걸 원하셨나?

안규리: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그러다 합의를 본 것이 의사였다.

김병준: 그림은 안 그리시나?

안규리: 안 그린다. 소질도 안 쓰다 보니 없어지는 모양이다. 이제는 만화 컷 하나도 잘 못 그린다(웃음).

김병준: 하나만 더 물어보자. 이종장기 연구, 즉 특별히 키운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기술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윤리나 종교적 신념과 배치되는 부분은 없나?

안규리: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일이다.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잘 결정하면 된다. 세계보건기구 등에서 여러 가지 규정을 만들고 있다. 다만 이슬람권에서는 종교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돼지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김병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까지 하겠다. 대단히 감사하다.

김병준 / 매일신문 2016.4.3